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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신학대학교 DAEJEON THEOLOGICA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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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익사료관

이자익 목사님의 발자취

한국교회 120년 역사상 전무후무한 거목(巨木), 이자익 목사님의 위대한 생애와 업적을 소개합니다.

이자익 목사님의 주요 업적
  1. 분열 이전의 장로교단 총회장을 세 번이나(13, 33, 34대) 역임하신 전무후무한 교단의 최고 어른입니다.
  2. 충청도(대전노회), 전라도(전북노회), 경상도(경남노회)를 망라한 전국에 걸쳐서 노회장을 여러 번 지내시며 약 20개의 교회를 설립하시고 목회하신 역사상 유례가 없는 최고의 목회자입니다.
  3. 70이 넘은 노령에도 불구하고 한 지역(대전)에서 신학교를 세우고 노회를 신설하고 교회를 만드시어 초대교장, 초대노회장, 초대당회장을 역임하신 유일무이한 인물입니다.
  4. 가난과 고아와 마부라는 밑바닥 인생에서부터 시작하여 목사로서의 최고의 영예와 영광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입지전적인 인생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입니다.
  5. 마부 출신이 그 집 주인(조덕삼)과 함께 교회를 설립하여 섬기다가 주인보다 먼저 장로로 피택 받고도 두 사람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며 역사상 최고의 감동을 남겼던 실화의 주인공입니다.
  6. 먼저 장로가 된 자기 집 마부 출신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평양까지 보내 신학공부를 시켜 목사로 만든 한국교회의 가장 훌륭한 인격자이신 조덕삼 장로를 만난 최고의 행운아입니다.
  7. 시골교회 처녀목회시절 큰 교회의 청빙을 거절하고 작고 연약한 시골교회를 지켰던 위대한 농촌목회자입니다.
  8. 입각(入閣)을 권유하는 부통령의 제의를 단호히 거절하며 장관보다는 목회자로 종신 할 것을 선언했던 투철한 소명의식을 가진 최고의 목사입니다.
  9. 일제의 신사참배에 전혀 가담하지 않고 창씨개명에도 불참하며 고난을 감수하였으나 본인의 신사참배 거부사실을 전혀 자랑하지 않았으며 신사참배 가담자들을 정죄하지도 않았던 한국교회의 역사상 가장 숭고한 정신을 남긴 스승입니다.
  10. 정치적 흥정에 전혀 흔들림이 없고 교회헌법에 정통하고 회의 규칙에 완벽한 지식을 갖추었던 전설적인 사회자(Moderator)로서 한국교회에 법치주의 정신을 심어주었던 최고의 법통(法通), 깨끗한 교회정치인의 표상입니다.
  11. 명예나 권력, 일신상의 유익을 위한 신앙의 변질이 전혀 없었던 한국교회가 낳은 제일의 거목(巨木)입니다.